뇌 속 숨겨진 섬 — 운동의 즐거움을 만드는 섬엽(Insula)의 비밀
운동하다가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 그 느낌의 정체는 섬엽(Insula)입니다. 뇌의 숨겨진 섬이 운동의 즐거움을 만드는 방식을 뇌과학으로 설명합니다.
헬스장에 도착해서야 이어폰을 두고온 것을 알았습니다. 집에 다시 다녀오기엔 너무 귀찮고, 시간도 없어서 그냥 하기로 했습니다.
러닝머신에 올라서 속도를 올렸습니다.
이상하게 평소와 똑같은 속도인데 더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시간도 더 느리게 가고, 30분이 마치 한 시간 같았습니다. 평소에 음악이 있으면 금방 지나가던 그 시간이, 오늘은 1분 1분이 다 느껴졌습니다.
운동이 그렇게 재미없는 날이었습니다. 아마 다들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계실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반대의 경험도 있습니다.
태국에 여행을 갔을 때 헬스장에서 운동한 날이었습니다. 기구 위치도 낯설고, 거울 각도도 달랐습니다. 익숙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운동이 더 잘 되는 것 같았습니다. 집중이 됐습니다. 몸의 감각이 평소보다 선명하게 느껴졌습니다. 근육이 움직이는 것도, 호흡이 깊어지는 것도. 운동이 끝나고 나서 평소보다 훨씬 상쾌했습니다.
두 경험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능력의 차이가 아닙니다. 의지력의 차이도 아닙니다. 컨디션 차이라고 하기도 애매합니다.
뇌의 특정 부위가 얼마나 활성화됐느냐의 차이입니다.
그 부위의 이름은 섬엽(Insula)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지만, 우리가 운동을 즐기거나 지루하게 느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뇌의 숨겨진 섬 — 섬엽이란 무엇인가
이름의 유래
섬엽은 라틴어로 Insula, 섬이라는 뜻입니다.
이름이 붙은 이유가 있습니다. 뇌의 측두엽과 전두엽이 깊게 접히는 틈 사이에 숨어있어서, 뇌 표면을 봐도 바로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다른 피질들에 가려진 작은 섬처럼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오랫동안 섬엽은 그 역할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었습니다. 그런데 뇌과학 연구가 정밀해지면서 이 숨겨진 섬이 우리의 감정, 신체 감각, 그리고 운동의 즐거움과 아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참고: 제니퍼 헤이스, 운동의 뇌과학, 2022)
몸 안의 신호를 읽는 부위
섬엽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은 내수용 감각(Interoception)을 처리하는 것입니다.
내수용 감각이란 간단히 말해 몸 내부에서 오는 신호를 감지하는 능력입니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 근육이 수축하는 것, 체온이 올라가는 것, 위장이 움직이는 것. 이 모든 내부 신호들이 섬엽으로 모입니다.
섬엽은 이것들을 실시간으로 읽고 통합합니다. 지금 이 순간 내 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뇌에 알려주는 관제탑 같은 역할입니다.
감정과 몸을 연결하는 다리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섬엽은 신체 감각만 처리하는 게 아니라, 감정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불안할 때 가슴이 답답해지는 느낌, 기쁠 때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 이것이 우연이 아닙니다. 섬엽이 신체 상태와 감정 상태를 통합하는 다리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감정은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섬엽을 통해 몸 전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몸이 좋은 상태일 때 감정도 좋아지고, 반대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섬엽과 운동의 즐거움
운동을 시작하면 섬엽이 바빠집니다
운동을 시작하는 순간, 섬엽은 분주해집니다.
심박수가 올라가는 것을 감지하고, 근육이 수축하고 이완하는 리듬을 읽습니다. 체온이 올라가고 땀이 나기 시작하는 신호도 처리합니다. 호흡이 점점 깊어지는 패턴도 받아들입니다.
이 모든 신호들이 섬엽으로 모여 통합됩니다. 그리고 그 신호들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조화롭게 작동하기 시작할 때, 섬엽은 긍정적인 신호를 만들어냅니다.
운동 초반의 불편함이 사라지고 몸이 리듬을 타기 시작하는 순간, 바로 그것이 섬엽이 “지금 몸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때입니다.
러너스 하이의 정체
달리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가볍고 기분 좋아지는 현상을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고 합니다.
오랫동안 이것이 엔도르핀 때문이라고 알려져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뇌과학 연구는 섬엽의 역할에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운동 강도가 적절한 수준에 도달하면 섬엽이 활성화되면서, 신체 감각과 감정이 긍정적으로 통합된다는 것입니다. 몸은 분명히 힘든데 기분은 좋아지는 그 역설적인 느낌이 바로 이 통합에서 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참고: 제니퍼 헤이스, 운동의 뇌과학, 2022)
같은 운동인데 왜 어떤 날은 더 즐거운가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같은 거리를 달려도 어떤 날은 즐겁고 어떤 날은 고통스럽습니다. 칼로리 소모는 똑같은데 말입니다.
그 차이 중 하나가 섬엽과 관련이 있습니다. 섬엽은 몸의 다양한 감각이 동시에 활성화될 때 더 강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신을 쓰는 운동, 리듬이 있는 움직임, 음악과 함께하는 운동이 더 즐겁게 느껴집니다.
러닝머신 위에서 핸드폰을 보며 달리는 것보다, 음악을 들으며 다양한 동작을 섞어 움직일 때 더 즐겁다고 느끼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섬엽에 들어오는 감각 신호가 훨씬 풍부해지기 때문입니다.
섬엽을 이해하면 운동이 달라집니다
의지력보다 감각이 먼저입니다
섬엽 연구가 알려주는 가장 중요한 통찰이 있습니다.
운동을 지속하게 만드는 것은 강한 의지력이 아니라, 운동 중에 느끼는 신체 감각에 얼마나 주의를 기울이는가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핸드폰을 보거나 딴 생각을 하며 운동하면 섬엽에 들어오는 신호가 약해집니다. 반면 지금 심장이 뛰는 느낌, 근육이 움직이는 감각, 호흡의 리듬에 집중하면 섬엽이 더 활발하게 작동하고, 그것이 운동의 즐거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딱 세 가지에만 집중해보세요
다음 운동 때 딱 세 가지에만 주의를 기울여보세요.
첫째, 지금 심장이 얼마나 빠르게 뛰고 있는가. 둘째, 지금 어떤 근육이 일하고 있는가. 셋째, 지금 호흡이 얼마나 깊은가.
이 세 가지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섬엽이 활성화되고, 운동의 감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반복하다 보면 운동이 단순한 고통의 시간이 아니라 몸 전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시간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섬엽은 지금 이 순간도 조용히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 몸이 어떤 상태인지. 이 운동이 즐거운지 괴로운지. 더 할 수 있는지 쉬어야 하는지.
그 신호를 읽는 것이 운동을 칼로리 소모의 수단이 아닌, 몸과 뇌가 함께하는 경험으로 만드는 출발점입니다.
다음 운동에서 한 번쯤 핸드폰을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 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주의를 기울여보세요.
숨겨진 섬, 섬엽이 반응하기 시작할 겁니다.
참고 자료
제니퍼 헤이스, 운동의 뇌과학 (2022), 현대지성 Craig, A.D., How do you feel? Interoception: the sense of the physiological condition of the body, Nature Reviews Neuroscience (2002)
면책 조항
본 콘텐츠는 신경과학 연구를 바탕으로 한 정보 제공 목적의 글입니다. 의료적 조언이 아니며 개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 적합한 운동 방식이 다를 수 있습니다. 운동과 관련한 건강 문제가 있으신 경우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